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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5 | 1/80sec | F/3.5 | +0.70 EV | 30.0mm | ISO-500 | Flash did not fire | 2017:03:10 10:15:11

나는 내가 처음으로 표를 던진 대선에서 그를 지지하지 않았으나, 박 모는 높은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병영에서 단체로 버스를 타고 나가서 치른 부재자투표는 외관상으로는 비밀선거의 구색을 갖춘 듯 하였으나,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으며, 새누리당 옷을 입은 아줌마들은 상꺾과 병장들 앞에서 월급을 올려줄 거라며 큰소리를 쳤다. 전역한 뒤 월급을 올린 만큼 보급품을 깎았다는 등등의 소문을 들으며 학부를 마쳤다. 그 선거를 치르러 나갈 때 관에서 태워 준 버스도 오늘의 저 버스와 비슷하였다.

법적으로 인간의 요건을 대충 갖춘 대상을 가금류에 빗대는 것은 영 좋지 않은 비유라고 생각했지만 치느님은 다 용서해 주실 거라 믿었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닭을 먹을 것을 종용하고야 말았다. 후배를 만나 닭갈비를 볶는 12시경의 뉴스는 3단 구성이었다. 맨 위에서 헌법재판관이 파면을 외치고 아래쪽에는 굵은 자막이 깔렸으며 잡다한 소식들은 맨 밑바닥에 지나가는데, 닭값이 역대 최고라고 그랬다. 닭이 줄어든 자리에 양배추와 떡과 라면사리가 있었다.

하지만 연구실에 출근하는 길에 카메라를 꺼낼 때만 해도 그렇게 넉넉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최악으로, 어딘가로 끌려가는 것만 같았다. 일이 잘 풀렸기에 국민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며, 우리가 직접 끌어내렸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내가 지방에서 들었던 촛불 하나는 어떤 의미였을까. 권좌는 비었지만 나의 자리일 가능성은 없을 것이며, 변화는 우리가 일으켰지만 나는 우리 가운데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 그저 좌석에 몸을 맡기며 깊은 터널을 질러가는 버스의 엔진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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