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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이야기는 아니다. 그 소동의 와중에 얼굴이 안 나온 사진이 이것뿐이었다.]


그냥, 1년이 되어 가는 김에 그런 사진을 찍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뿐이다.



저 일들을 생각나게 했던 건, 며칠 전에 어떤 선배가 급히 전화를 걸어 왔기 때문이었다.

'당장 사진을 만들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쉽게 구할 수도 있겠지만 웬만하면 나였으면 좋겠다',

출장을 요구하는지라 거절했지만, 행사 전날에야 찍사를 구하고 있었으니 그 쪽이 이해했어야 했다.


내가 무슨 역사적인 사진을 만든 적이 있었기에 그랬던가, 나름 '결정적 순간' 같은 게 있긴 했다.

11개월 보름 전이었다. 학교 시책에 대해서 어떤 반대 운동이 있었는데, 나름 뜨뜻미지근했다.

그게 시작될 쯤에는, 나도 졸업하기 전에 학생운동이라는 데 발끝 한 번 담궈 볼까가 절반,

그리고 옛날 총장 시절, 지옥같던 그 시절이 돌아오고야 마느냐는 탄식이 절반이었다.


그러다가도 학생회 하는 분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고 시간이 좀 지났었다. 그리고 어느 날,

총장이 참석하는 공식 행사가 있으니 그걸 좀 찍어 와 달라는 그 선생의 급한 연락이 왔다.

무슨 소리인가 하며 툴툴대며 나갔다가 총장에게 대항하는 어떤 작은 시위를 보게 되었다.

나는 그걸 찍어 사진을 넘겨줬고, 아는 사람과 떠들었으며, 행사에서 뿌려주는 수건을 챙겼다.


또 다른 날에는 또다른 누군가가 어떤 회의에 카메라를 들고 오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회의가 끝나자 그 시위에 연결된 다른 퍼포먼스도 찍었다. 사진들은 하나같이 평범했다.

그 정도 카메라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 다만 피사체는 특별했다.

그 날이 아니면 모일 수 없다는 느낌적인 느낌과 그 시절이 아니면 보여 줄 수 없는 신념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에게 위치와 자세를 주문했었다. 모두 내 렌즈를 보고 있었다. 눈빛이 따가웠다.


마지막에 그 사진이 학교 신문사 1면에 오를 때, 의뢰인이 저작권을 어찌할 것인지를 물었다.

나는 어떤 주장도 부러 하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주인 없는 사진으로 아카이브에 남아 있다.

딱히 이런 구질구질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낸 것도 그 사진에 침이나 발라두려는 게 아니다.

어제부터 사진을 너무 많이 보아서 생각이 난 거다. 누가 찍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하지만 어떤 주장들이 물대포처럼 곧게, 캡사이신처럼 맵싸하게 덤벼드는 꼬락서니를 보게 되어서.

화각은 반드시 편파적이고 노출은 기계가 더 잘 안다. 어느 쪽이나 서로를 찍어서 고자질한다.


물론 우리 학교 사람은 다 알지만, 그 때 우리네 학교에서 벌어진 시위판은 너무도 허망하게 깨졌었다.

사진들을 만들 때 품었던, 나중에 이게 불이익이 되면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긴장감도 의미가 없어졌고,

단지 셔터를 누르던 그 순간만 남는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봤고, 그 밝은 눈빛들에

흔들림은 하나도 없었지만, 누구 하나 눈감지 않았지만, 나는 왼눈을 감고 뷰파인더 뒤에 온전히 숨었다.

품어 왔던 신념들이 모조리 흔들리게 되면, 그 뜻에 따라 주문되었던 이미지들은 모두 무력하다.

우리가 어저께 광화문의 사진들울 어떻게 소모하게 될 것인지, 그런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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