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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멀어 보이기도 한다.

나는 새 옷을 입고 옛 방으로 갔다.
학교로 돌아오고 나서 지금까지 옛 동아리방 자리를 들렀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방에는 그저 예전의 지독한 기억들이 독한 좀약 냄새를 입고 있을 것만 같았다.
일 년에 하루 빼고는 몸이 없는 그 옷들처럼, 사람다움, 스승다움을 가장하던 때였다.

그 방은 어느새 누구에게나 비어 있었다.
그래, 몸이 없는 옷들이 좀약 냄새나 풍기는 것보다는
다용도실이 되어서 춤과 땀냄새와 음악이 있는 게 낫잖은가.

내가 그 철거를 목격한 뒤로 다시는 그 위치에 칸막이가 세워지지 않은 듯했다.
옆에 있던 방과 합쳐진 그 공간은 을씨년스러웠다. 빈 방 하나에 문이 한 쪽 벽에 두 개가 있었고,
세간이 없어 공허한 방 한 쪽은 거울로 막혀서 그 헛헛함을 두 배로 늘리려 하는 듯했다.

새벽해가 떠오르지 못하고 먹구름 끼인 하늘을 차츰 밝힐 즈음이라,
남향이던 그 창문으로, 물처럼 검푸른 색이 블라인드를 넘어왔다.
나는 칸막이들과 세간들과 얼굴 모를 선배들이 땀흘리며 설치했을 격벽과
그 속의 검은 방을 떠올렸다. 방은 검은 것이어야 했다.

혼자서 암실의 집기들을 다 끄집어내며 바닥 수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5년 반 전이었고
그 방의 주인이 되자마자 철거를 당했던 것이 4년 반 전이었다. 한때 그 방에서 누군가와 함께
내 나날들이 저 이파리와 꽃잎의 색이 되리라 꿈꾸어 보았던 때는 두 사건의 가운데에 있었다.
그 방에 많은 것을 걸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걸려 있던 것들은 걸이가 없어지면
모두 바닥에 떨어지기 마련이고, 떨어지면 섞이고 채이고 흩어지기 마련이었다.

솔직히 나 혼자 그 방에 망령이라도 들린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구석의 테이블에 기대어 있는 내가 지박령 같았다.
허나 이제 '우리'가 그딴 이유로 방을 잃은 적이 있다는 것,
그 후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 언젠가부터 아무에게도 중요하지 않고
그렇기에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일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우리'도 더는 없게 되었다. 아무도. 없었다.
흩어져 버린 나날들, 흩어지는 사람들, 흩어질 기억들.
그렇게 나만 이 동아리에 남아서 대체 무얼 생각하는 걸까.

차라리 그 때부터 영영 사라지는 게 나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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